늦겨울의 시간은 흡사 얼어붙은 호수 같았다. 시간이 꽁꽁 언 것처럼 흐르지 않았다. 혹시 시곗바늘이 멈춘 건 아닌가 싶어 성우는 맞은편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의 바람일랑 알 리 없는 시계는 단지 째깍째깍하는 소리로 대답을 대신했다. 시침과 분침, 그리고 초침은 일정한 간격으로 쉼 없이 움직였다. 그런데도 날은 더디게 흘렀다. 성우는 시계에 손가락을 집어넣...
민현은 유달리 성우의 얼굴을 좋아했다. 단순히 잘생겨서가 아니라, 그의 생김새 자체가 너무나 취향에 들어맞았기 때문이었다. 암만 성우가 부끄러워해도, 민현은 종종 완벽한 조각상을 보듯 성우를 감상하곤 했다. 그는 진심으로 눈이 두 개인 이유가 아름다운 연인의 오른쪽 얼굴과 왼쪽 얼굴을 전부 담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설령 한쪽이 못 보고 지나친대도 다른 한...
* 11/17에 최초 업로드했던 21편과 내용이 상이한 것으로, 새로 추가된 에피소드입니다. 몹시 서늘한 새벽공기였다. 밤하늘을 가득 채우던 별은 전부 두꺼운 구름 뒤로 숨었다. 찬 바람을 정면으로 맞닥뜨렸다간 금방이라도 얼어붙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이건 허울 좋은 변명에 불과했다. 별이 숨은 이유는 단지 추워서가 아니었다. 지상에서 밝게 빛나는 어떤 ...
지구는 하루에 1°씩 공전한다. 이는 굉장히 미미한 움직임으로, 하루 이틀로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러나 지구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동쪽으로 나아감으로서 변화의 폭은 점차 증가하게 된다. 민현과 성우가 발을 딛고 선 경성에서도 절기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바뀌었다.눈에 보이는 변화의 증거는 비단 지상뿐 아니라 천계에서도 나타났다. 어느덧 가을 하늘을 수놓았던 ...
“읏, 으응….”촘촘한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감은 눈이 더욱 깊게 감기고, 손에는 바짝 힘이 들어가 민현의 어깨를 꽉 붙들었다. 혀 아래쪽 예민한 곳을 살살 긁어준 탓이었다. 그가 모르는 척하며 한 번씩 찌를 때마다 성우는 움찔거리며 일련의 반응을 나타냈다.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민현은 감았던 눈을 살짝 뜨고 성우를 바라보았다. 성우는 순진한 얼굴을 잔...
어느덧 하늘이 저만치 높아졌다. 손에 잡힐 듯 생생하던 뭉게구름은 멀어지고 옅어졌다. 무더위가 한 발짝 물러난 틈새엔 시원한 바람이 파고들었다. 절기가 바뀐다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살아있는 많은 것들은 모습을 바꾸어 갔다. 여름 내내 무수한 꽃송이를 피워냈던 능소화는 마지막 꽃을 틔웠고, 길가의 코스모스는 산들바람에 흔들리며 자신을 꽃피웠다. 태양만이 홀로 ...
사랑은 두 사람의 눈을 교과서의 문자 위를 더듬게 하지 않고, 서로의 눈망울 속에 머물게 했다.- Peter Abelard 성우는 책을 덮었다. 더는 내용이 궁금하지 않았다. ‘오즈의 마법사’는 신비로운 사건으로 가득했지만, 그의 흥미를 잡아끌지 못했다. 그는 도로시와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에게서 어떤 매력도 느끼지 못했다. 과연 도로시가 집으로 돌...
10/17 중간에 오류가 있어 일부 수정함. 내용상 변화는 적음. 여기 뜨겁게 달궈진 용광로가 있다. 최근에 단단한 고로高爐의 표면 위로 실낱같은 균열이 생겼다. 그 균열 사이로 수증기가 새어나가고 있다. 용기容器를 빠져나간 뜨거운 공기는 상단을 달궜다. 그 온도와 압력 때문에 셀 수 없이 많은 낱말이 불규칙한 직선 운동을 하며 요동쳤다. 용광로의 주인으로...
발목의 붕대를 풀기까지는 이 주 넘게 걸렸다. 성우는 갑갑한 느낌이 싫어서 빨리 풀고 싶어했지만, 민현은 확실히 괜찮아지고 나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도 완강하게 구는 바람에 성우는 손도 대지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했다. 붕대를 풀기 전까지 성우의 발목은 민현이 꽉 쥐고 있었다. 그는 도맡아서 삼일에 한 번씩 소독하고 붕대를 갈며 정성을 기울였다. 간...
동이 틀 무렵이 되자 멀리서 서광曙光이 비쳐 왔다. 민현은 닭이 울기도 전에 일어나 부지런히 학교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기존에 두 명이 쓰던 화장실을 셋이서 나눠 쓰려면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규원 역시 이르게 일어나 분주하게 나갈 채비를 했다.한편 성우는 여전히 꿈나라에 머물렀다. 그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어서 혼자 일어나는 걸 못했다. 자연스레 민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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